고령 환자의 수술 후 섬망, 그리고 가족들이 놓치고 있던 변화에 대해
원래 안 이러셨는데요,라는 말을 들을 때
요즘 중환자실엔 80대, 심지어 90대 환자도 드물지 않다. 의료 기술이 좋아지면서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큰 수술을 고령 환자들도 받는다. 그런데 수술 직후 회복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종종 난감한 순간이 온다. 보호자가 병상 옆에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 원래 이러지 않으셨어요. 왜 이렇게 되신 거예요?"
수술 전까지 멀쩡하시던 분이 마취에서 깨고 나서 갑자기 날짜를 헷갈려하고, 낯선 사람을 아들로 착각하고, 밤새 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뜯어내려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매일 이런 환자들을 보는 나로서는, 이 반응이 사실 아주 흔한 패턴이라는 걸 안다.

전신마취와 긴 수술이 뇌에 남기는 부담
7~8시간씩 이어지는 전신마취는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도 상당한 부담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뇌는 이 충격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수술 후 섬망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은 고령, 원래 있던 인지 저하, 전신 상태가 나쁠수록 매겨지는 마취 위험도 등급(ASA), 노쇠, 여러 만성질환, 그리고 시력이나 청력 같은 감각 기능 저하다.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출혈이 많을수록 이 위험은 더 커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섬망(delirium)과 치매(dementia)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섬망은 대개 며칠 안에 호전되는 급성 혼란 상태이고,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는 만성적인 인지 저하이다. 문제는 이 둘이 겉으로 볼 때 아주 비슷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섬망을 겪은 환자가 이후 실제로 영구적인 인지 저하 또는 치매로 이어질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메이요 클리닉이 65세 이상 환자를 1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수술 전 인지 기능이 정상이었던 환자라도 수술 후 섬망을 겪으면 이후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받을 확률이 세 배 가까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 몰랐던 미세한 변화
더 흥미로운 건 존스홉킨스 자료에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섬망이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인지 저하를 겉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환자 본인이 스스로 그 저하를 보완하며 티 내지 않고 지내 왔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매일같이 사는 가족은 이 변화를 눈치채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오늘 조금 깜빡하고 어제와 조금 다르게 말해도, 그게 매일 조금씩 쌓여 온 변화라면 "원래 저러셨나" 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반면 수술과 마취라는 큰 사건을 거치고 나면 그 미세한 저하가 한 번에 터져 나오듯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보호자가 "원래 안 이러셨다"라고 할 때, 그 말을 반박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보이는 혼란은 대부분 며칠 안에 좋아지는 일시적인 상태일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조금씩 있었을지 모르는 변화를 병원에서 함께 점검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실제로 고관절 수술 후 섬망을 다룬 최근 연구에서도, 수술 전 인지 기능이 정상이었던 환자들이 섬망을 겪은 뒤 오히려 이후 기억력 저하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원래 인지 저하가 있던 환자군에서는 이런 가속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간호사로서 가족들에게 전하는 말
나는 보호자들에게 이 시기를 너무 겁내지 말라고, 하지만 가볍게 넘기지도 말라고 말한다. 섬망 자체는 수분과 전해질을 바로잡고, 수면 리듬을 지켜주고, 통증을 조절하고, 안경이나 보청기처럼 평소 쓰시던 걸 다시 가져다드리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좋아진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예전 같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면, 그건 노망이 아니라 진지하게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아봐야 할 신호일 수 있다. 그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 다름 아닌 매일 곁을 지키는 가족이라는 것도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