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이 보내는 신호, 그냥 넘기고 있진 않은가

장 건강이 무너지면 생기는 일
요즘 미디어를 보면 연예인들이 나와서 프로바이오틱 몇 박스씩 쌓아 놓고 "이거 먹고 똥배가 쫙 빠졌다"라고 광고하는 걸 심심찮게 본다. 나도 그걸 보고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런 광고들을 보다 보면 자꾸 초점이 "살이 빠지느냐 마느냐"에만 맞춰진다는 느낌이 든다. 정작 중요한 건 장이 무너지면 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인데 말이다.
장은 단순히 소화만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다. 몸 전체의 면역세포의 상당수가 장에 몰려 있고, 장점막이 건강해야 그 면역 기능도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장 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진 상태, 이른바 디스바이오시스가 만성화되면 장점막 장벽이 약해지고, 이게 전신에 걸친 만성 저강도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연구들은 이런 만성 염증이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골다공증, 신경퇴행성 질환까지 다양한 만성질환의 병태생리에 관여한다고 보고 있다.
더 무겁게 다가온 부분은 대장암과의 연관성이었다. 대장암 환자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장내장 내 미생물 불균형이 관찰되는데, 유익균으로 분류되는 균들이 줄고 염증을 유발하는 균들이 늘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산물이 염증과 DNA 손상 같은 기전에 관여해 대장암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장 건강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암이 생긴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는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 방치된 나쁜 식습관과 장내 환경이, 되돌리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변비가 왔다 갔다 하고, 똥배도 슬금슬금 나온다. 그런데 아침에 개운하게 화장실을 다녀온 날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가볍다. 이게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장 상태가 그날의 컨디션과 면역, 나아가 장기적인 건강까지 좌우한다고 생각하니 예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서 뭘 해봤나-서양식 요거트, 한국인 장에도 잘 맞을까
아침마다 브로콜리도 챙겨 먹고, 유명하다는 요구르트도 한 스푼씩 먹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별 효과를 못 느꼈다. 며칠 먹어보고 효과가 없다고 포기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원래 오래 먹어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장내 미생물 균형은 며칠 만에 바뀌는 게 아니라고 한다. 특정 균이 장에 자리를 잡고 기존 균총과 균형을 이루기까지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은 꾸준히 이어가야 변화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처럼 며칠 먹고 효과 없다고 판단하기엔 애초에 기간이 너무 짧았을 수 있다.
또 하나 의문이었던 건, 유산균 제품이 정말 모두에게 똑같이 잘 맞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사람마다 장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균총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제품을 먹어도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광고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변화가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 유산균 제품이나 요구르트는 서양에서 개발되고 연구된 균주를 기반으로 한다. 서양인의 식습관과 장 내 환경에서 효과가 검증된 균주가, 밥과 국, 발효식품 위주로 오랫동안 식사해 온 한국인의 장에도 똑같이 잘 맞을지는 사실 확신하기 어렵다.
찾아보니 이 부분에 대한 국내 연구도 진행되고 있었다. 전통 발효식품에서 분리한 균주와 한국인의 장내 미생물 균총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해서, 한국인의 유전적·생리적 특성에 맞는 유산균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치에서 분리한 유산균 중에는 면역 기능 개선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돼 국산 제품으로 상용화가 추진되는 사례도 있었다. 굳이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니어도, 한국 전통 발효식품 유래 균주가 우리 몸에는 더 잘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옛날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장을 관리했을까
사실 우리 조상들은 유산균이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밥상 자체가 이미 유익균 창고였다. 매 끼니 올라오던 김치, 된장, 청국장, 간장, 젓갈까지 전부 발효식품이었고, 이 안에는 수백 가지 서로 다른 미생물이 관여했다. 특히 김치 발효 초기에 활발하게 작용하는 유산균, 된장이나 고추장에 들어 있는 고초균 같은 균들이 최근 들어 새로운 프로바이오틱 소재로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김치 섭취가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국내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일정 기간 김치를 먹였다가 끊었다가를 반복시키며 장 상태 변화를 관찰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 조상들이 매일 챙겨 먹던 그 평범한 반찬들이, 지금 비싸게 사 먹는 유산균 캡슐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역할을 해 왔던 셈이다.
동의보감에도 유산균이 나올까
문득 궁금해져서 동의보감도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산균'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없다. 미생물의 존재 자체가 19세기 파스퇴르 이후에야 밝혀졌으니, 17세기 문헌에 균 이야기가 나올 리 없다. 대신 동의보감을 관통하는 큰 축 중 하나가 비위(脾胃), 즉 소화기의 건강이었다. 비위가 튼튼해야 온몸의 기운이 제대로 돌고, 비위가 약하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봤다. 설사나 이질을 다스리는 처방들도 여럿 있는데, 이건 균을 억제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몸이 차거나 허해서 소화 기능이 무너진 상태를 따뜻하게 보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유산균과 동의보감의 음양오행·오장육부론은 사실 설명하는 언어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유산균은 특정 균주가 실제로 장에 자리를 잡아 유해균을 억제하고 면역을 조절한다는 미생물학적 기전으로 설명하고, 동의보감은 균이라는 개념 없이 기의 균형과 조화로 몸을 설명한다. 그래서 두 체계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흥미로운 건, 방식은 완전히 달라도 두 체계가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장, 즉 소화기의 균형이 무너지면 몸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 몇백 년의 시차를 두고 완전히 다른 언어로, 같은 통찰에 각자 다른 길로 도달한 셈이다.
살 빼는 것보다 중요한 것
사실 나는 살을 빼는 것 자체보다, 장이 오랜 시간 방치되어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가지 않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광고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똥배가 쏙 빠지는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매일 먹는 밥상에 김치나 된장국 같은 발효식품을 조금 더 자주 올리고, 그걸 몇 주, 몇 달 꾸준히 이어가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싼 캡슐을 몇 박스씩 사기 전에, 일단 우리 부엌에 있는 김치통부터, 그리고 평소 식습관부터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참고자료
BRIC Bio리포트 - 대장암에서 장내미생물 균총의 역할: https://www.ibric.org/bric/trend/bio-report.do?mode=view&articleNo=8693734
하이닥 -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전신 만성질환 부른다: https://news.hi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297
하이닥 - 장 건강 지키는 식단이 대장암 막는다: https://news.hi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158
식품저널 - 전통발효식품의 미생물 기능 규명, 과학자들의 숙제: https://www.food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539
식품음료신문 - 김치유산균에서 또 다른 프로바이오틱스 발굴: https://www.thinkfood.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476
ScienceON 논문 - 김치의 섭취가 인체의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199603042044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