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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유독 잘 걸린다는 통풍, 진짜 맥주 때문일까

몇 년 전에 타지에서 오랜만에 남자 동창을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이 친구가 대뜸 "나 통풍 있어서 술 조심해야 돼"라고 하는 거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명색이 중환자실 간호사인데, 통풍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잠깐 생각해 보니 아, 그 '풍(風)'이 바람 풍 자 들어가는 그 병이구나 싶었는데, 정작 왜 생기는지, 왜 여자보다 남자한테 압도적으로 많은지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사실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통풍약 챙겨 먹는 남자 환자를 정말 흔하게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병원에서는 여자 환자 중 통풍으로 약을 먹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도 맥주를 좋아하는데 왜 나는 안 걸릴까, 그 친구는 맥주 때문이라고 단정짓던데 정말 술이 전부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찾아보고 정리해 봤다.

통풍은 사실 술보다 '요산' 문제다

통풍은 혈액 속 요산이라는 물질이 너무 많이 쌓여서 관절 안에 바늘처럼 뾰족한 결정으로 굳어버리는 병이다. 이 결정이 관절을 콕콕 찌르니까 그렇게 붓고 벌겋게 되고 못 걸을 정도로 아픈 거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술 자체가 원인이라기보다, 술이 요산 수치를 끌어올리는 여러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 게 맞다. 맥주는 특히 퓨린이라는 성분이 많아서 다른 술보다 요산을 더 많이 올리는 편이라, 동창이 맥주 탓을 한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왜 여자보다 남자한테 많을까 — 답은 에스트로겐

이게 제일 궁금했던 부분인데, 답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에 있었다. 에스트로겐은 콩팥이 요산을 소변으로 잘 내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폐경 전 여성은 남성보다 요산 수치가 낮게 유지되고, 자연히 통풍도 훨씬 드물게 나타난다. 문제는 폐경 이후다.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들면서 요산 배출 기능도 함께 떨어지고, 그때부터 여성의 통풍 발생률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 실제로 여러 코호트 연구에서도 폐경 후 여성의 통풍 위험이 남성 못지않게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맥주를 마셔도 괜찮은 건, 아직 에스트로겐이 방패 역할을 해 주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재밌는 건 폐경 후 여성이 통풍에 걸리면 남자와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흔히 엄지발가락 관절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은 발목이나 무릎, 손목처럼 다른 관절에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젊은 남자도 걸리나, 아니면 나이 들어서 생기나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가능하다. 다만 남녀 사이의 발병 시기 차이가 뚜렷하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그러니까 30~40대에 첫 통풍 발작을 겪는 경우가 흔한 반면, 여성은 대부분 폐경 이후, 그러니까 50대 후반에서 60대에 처음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50세 이전까지는 남녀 통풍 발생률 차이가 특히 크게 벌어진다는 자료도 있다. 내 동창도 아직 젊은 축인데 벌써 통풍이 생겼다고 한 걸 보면, 젊다고 방심할 병은 절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술 말고 다른 원인은 없을까

있다. 그리고 임상적으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는 비만, 고혈압, 퓨린이 많은 음식(붉은 고기, 내장류, 등푸른 생선 같은) 과다 섭취, 이뇨제 복용, 그리고 유전적 소인이 꼽힌다. 특히 비만은 여러 연구에서 술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통풍 위험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나온다. 신장 기능이 떨어져서 요산 배출 자체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대사증후군이나 당뇨, 고혈압을 같이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통풍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까 "나는 술을 안 마시니까 괜찮다"라고 안심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다.

예방할 수 있을까, 약으로 완치가 되는 걸까

완전히 예방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위험을 확실히 낮출 수는 있다. 체중 관리, 퓨린이 많은 음식 줄이기, 물 충분히 마시기, 과도한 음주, 특히 맥주 줄이기 정도가 기본이다. 이미 발작을 겪었거나 요산 수치가 계속 높게 나오는 사람이라면 요산을 낮추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게 필요한데, 이건 '먹으면 낫고 끊으면 도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만성질환 관리에 가깝다. 완치라는 개념보다는 요산 수치를 꾸준히 정상 범위로 유지해 발작이 재발하지 않게 관리하는 병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병동에서 통풍약을 챙겨 먹는 환자분들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계신 걸 자주 본다.

그날 동창이 맥주 대신 사이다를 시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그냥 술 못 먹는 핑계인가 싶었는데, 이제 와서 찾아보니 나름 진지하게 몸 관리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통풍이 흔히 '술꾼들의 병'이라고 농담 섞어 불리곤 하지만, 실제로는 호르몬, 유전, 대사 상태가 복합적으로 얽힌 병이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다.

참고자료

  1. Gout Affects Women Differently — Arthritis Foundation (arthritis.org/diseases/more-about/women-not-immune-to-gout)
  2. 통풍, 중년 남성만의 병 아냐, 폐경 후 여성도 주의 — 이대목동병원 류마티스내과 (wch.eumc.ac.kr)
  3. 통풍은 왜 남자들에게 주로 올까? — 이엠디 헬스케어 (md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