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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목 수술을 받고 올라온 남자 환자분들을 꽤 자주 만나게 되거든요. 입안이나 목 안쪽을 크게 절개하고, 기관절개관을 달고, 한동안 입으로 아무것도 못 드시는 분들이요. 그런데 그중에는 술도 담배도 거의 안 하셨다는 40~50대 분들이 섞여 있더라고요. 차트를 넘겨 보면 진단명 옆에 'HPV 양성'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HPV 하면 여성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 많은데, 현장에서 보는 HPV는 남자에게도 꽤 현실적인 바이러스예요. 그래서 이번 글은 온전히 남성 입장에서만 풀어보려고 해요. 남성 HPV가 어떻게 옮고, 어떤 증상을 남기고, 언제 병원에 가야 하는지, 그리고 남자 HPV 백신은 언제 맞는 게 좋은지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볼게요. 여성 HPV 이야기는 다음 2편에서 따로 다룰 예정이에요.
남성도 HPV에 감염되고, 생각보다 훨씬 흔해요
HPV는 사람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의 줄임말이에요. 피부와 점막에 사는 바이러스로, 종류만 200가지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죠. 이 중 생식기 쪽을 감염시키는 유형이 40여 가지인데, 크게 두 갈래로 나눠서 이해하시면 편해요. 6번, 11번처럼 사마귀를 주로 만드는 '저위험군', 그리고 16번, 18번처럼 오래 머물면 세포를 변형시켜 암까지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군'이요.
남자도 당연히 감염돼요. 미국 조사에서는 성인 남성의 절반 가까이에서 생식기 HPV가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을 만큼 흔하거든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 평생 한 번쯤은 거의 누구나 감염된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HPV라니" 하고 너무 충격받으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감염 경로는 피부와 점막이 맞닿는 접촉이에요
HPV는 피와 체액으로 옮는 바이러스라기보다는, 피부와 점막이 직접 맞닿을 때 옮는 바이러스예요. 그래서 질 성교뿐 아니라 항문 성교, 구강성교로도 전파되고, 삽입이 없는 밀접한 접촉만으로도 옮을 수 있죠.
여기서 많이들 오해하시는 게 콘돔이에요. 콘돔은 분명히 위험을 줄여주지만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하더라고요. 콘돔이 덮지 못하는 음낭이나 사타구니, 항문 주변 피부에도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구강성교가 목 안쪽 감염의 주된 통로로 꼽히는 것도 같은 이유고요.
남자 HPV 증상은 대부분 '아무것도 없음'이에요

남성 HPV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아무 증상이 없다는 거예요. 몸이 알아서 바이러스를 정리하는 동안 본인은 감염된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눈에 보이는 증상이 생긴다면 가장 흔한 건 생식기 사마귀예요. 음경, 음낭, 사타구니, 항문 주변에 살색이나 약간 하얀색, 갈색의 작은 돌기가 올라오는데, 하나만 생기기도 하고 여러 개가 모여 꽃양배추처럼 보이기도 해요. 대개 아프지는 않고, 가끔 가렵거나 스칠 때 불편한 정도라서 그냥 두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고위험군 HPV는 사정이 달라요. 사마귀 같은 신호를 거의 남기지 않고 조용히 머물다가, 수년에서 수십 년이 지나 암이라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죠. 남성에게서는 구인두암, 항문암, 드물게 음경암이 여기에 해당해요.
증상이 없는 감염이 가장 조용하게 퍼져요
증상이 없다는 건 본인에게는 다행일 수 있지만, 전파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까다로운 부분이에요. 아무렇지 않으니 검사를 받을 이유도 없고, 그 사이 파트너에게 옮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파트너의 검사 결과로 뒤늦게 HPV를 알게 되는 남성분들도 많아요. 이때 "나는 아무 증상도 없는데?" 하며 당황하시거나, 반대로 서로를 의심하면서 관계가 흔들리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HPV는 몇 년씩 조용히 머물 수 있어서, 지금 발견됐다고 최근에 누군가에게서 옮았다고 단정할 수가 없어요. 누가 먼저였는지 따지기보다 함께 관리해야 할 흔한 바이러스라고 받아들이시는 게 훨씬 건강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남성 HPV 검사는 여성과 사정이 다르더라고요
여기서 많은 분들이 당황하세요. 남성에게는 HPV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표준 선별검사가 없거든요. 미국에서도 증상이 없는 남성에게 HPV 검사를 일상적으로 권하지 않고, 남성용으로 공식 승인된 HPV 검사도 없어요.
한국에서는 비뇨의학과나 일부 검진센터에서 요도나 생식기 피부를 면봉으로 문질러 HPV 유전자를 확인하는 검사를 비급여로 받을 수 있어요. 다만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가 필요하죠. 검체를 채취한 그 부위, 그 시점의 결과일 뿐이고, 양성이 나와도 대부분은 저절로 사라질 감염이라 당장 치료할 게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음성이 나왔다고 해서 다른 부위에 바이러스가 없다는 보장도 없고요.
생식기 사마귀는 대부분 눈으로 보고 진단해요. 애매할 때는 조직검사를 하기도 하고요. 항문암 위험이 높은 분들, 예를 들어 HIV 감염인이나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드시는 분들은 항문 세포검사(항문 안쪽 세포를 채취해 이상 변화가 있는지 보는 검사)를 권유받을 수 있어요.
이럴 땐 미루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세요
생식기나 항문 주변에 전에 없던 돌기가 만져진다면 비뇨의학과나 피부과에 가보시는 게 좋아요. 부끄러워서 몇 달씩 미루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마귀는 작고 개수가 적을 때 치료가 훨씬 수월하거든요.
목 쪽 신호도 기억해 두세요. 목 한쪽에 아프지 않은 멍울이 만져지고 몇 주가 지나도 줄어들지 않을 때, 목이 아프거나 삼키기 불편한 느낌이 2~3주 넘게 이어질 때, 감기도 아닌데 한쪽 귀만 계속 아플 때, 목소리가 쉰 채로 돌아오지 않을 때는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아요. 제가 중환자실에서 만난 구인두암 환자분들 중에도 "목에 뭐가 만져졌는데 그냥 임파선이 부은 줄 알았다"라고 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항문 출혈이나 가려움, 통증, 멍울이 계속될 때도 마찬가지예요. 치질이겠거니 하고 넘기기 쉬운데, 몇 주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대장항문외과에서 한 번 확인받아 보세요.
HPV 자연소멸, 대부분은 2년 안에 사라져요
다행스러운 소식도 있어요. HPV 감염의 대부분은 몸의 면역이 알아서 정리해 주거든요. CDC에 따르면 감염의 약 90%는 2년 안에 저절로 사라진다고 해요.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문제는 나머지 일부예요.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무는 걸 '지속 감염'이라고 부르는데, 고위험군 HPV가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 때 세포 변형이 쌓이고 암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면역이 떨어져 있는 분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분들은 바이러스가 잘 안 떨어지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죠.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에요.
바이러스 자체를 없애는 약은 아직 없어요
"그럼 치료제는 뭘 먹으면 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아쉽게도 HPV 바이러스를 직접 없애는 항바이러스제는 아직 없어요. 그래서 치료는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결과물, 즉 사마귀나 세포 변형, 암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죠.
인터넷에 '면역력 올려서 HPV 없애는 영양제' 같은 광고가 많이 보이는데, 근거가 확실한 방법은 아니니 비싼 돈 들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잘 자고, 담배 끊고,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는 게 결국 제일 확실하더라고요.
생식기 사마귀 치료와 재발은 한 세트로 생각하세요
생식기 사마귀 치료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에요. 집에서 직접 바르는 약, 그리고 병원에서 제거하는 시술이요. 바르는 약으로는 면역 반응을 끌어올려 사마귀를 없애는 이미퀴모드 크림이 대표적이고, 병원에서는 액체질소로 얼리는 냉동치료, 레이저, 전기 소작, 수술적 절제 등을 사마귀 크기와 위치에 따라 골라서 해요.
그런데 치료받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사실 재발이에요. 눈에 보이는 사마귀는 없앴지만 주변 피부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어서, 몇 달 안에 다시 올라오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한두 번 재발했다고 치료가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걸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은 몇 차례 치료를 거치면서 면역이 따라잡고,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져요. 치료 중에는 파트너와의 접촉을 조심하고, 스스로 뜯거나 긁지 않는 게 중요하고요.
참고로 사마귀를 만드는 6번, 11번은 저위험군이라 사마귀 자체가 암으로 변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렇다고 방치하면 번지고 커지니, 발견했을 때 치료를 시작하시는 편이 훨씬 편해요.
남자 HPV 백신은 감염 전에 맞을수록 효과가 커요
HPV 백신은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감염을 미리 막아주는 백신이에요. 그래서 성 접촉을 시작하기 전, 어릴 때 맞을수록 효과가 가장 좋죠. 9가 백신(가다실9)은 사마귀를 만드는 6·11번과 암과 관련된 16·18·31·33·45·52·58번까지 아홉 가지 유형을 막아줘요. 연구에서 남성 생식기 사마귀와 항문 전암 병변을 크게 줄여준다는 결과가 이미 나와 있고요.
한국에서는 올해 큰 변화가 있었어요. 2026년 5월 6일부터 HPV 국가예방접종 지원 대상이 12세 남자아이(2014년생)까지 확대됐거든요. 남자아이는 그동안 전액 본인 부담이었던 걸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이죠. 지원 백신은 4가이고, 6개월 간격으로 2회 맞으면 되고, 가까운 위탁의료기관에서 접종할 수 있어요. 9가 백신을 원하시면 비용을 따로 내고 맞으셔야 하고요.
미국은 11~12세 접종을 기본으로 권하고, 9세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맞지 못했다면 26세까지 따라잡기 접종을 권하고, 27~45세는 의사와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죠. 15세 전에 시작하면 2회, 15세 이후에 시작하면 3회가 그동안의 기준이었는데, 최근 미국에서는 접종 횟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일정 논의가 진행 중이라 접종 전에 소아과나 주치의에게 최신 기준을 확인해 보시는 게 안전해요.
이미 성인이 된 남성은 이미 몇 가지 유형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아서 효과가 어릴 때만큼 크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직 감염되지 않은 유형은 막아줄 수 있으니, 20대라면 한 번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구강암보다 구인두암과 더 깊게 얽혀 있어요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부분을 짚고 넘어갈게요. 구강은 혀, 잇몸, 볼 안쪽처럼 입 안 공간을 말하고, 구인두는 입을 크게 벌렸을 때 보이는 목젖 뒤쪽, 편도와 혀뿌리가 있는 부분을 말해요. 이름은 비슷하지만 HPV와의 관계는 꽤 다르거든요.
혀나 잇몸에 생기는 구강암은 여전히 담배와 술이 가장 큰 원인이에요. 지난 글에서 술과 담배가 함께일 때 위험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래서고요. 반면 편도와 혀뿌리에 생기는 구인두암은 HPV, 특히 16번과의 관련성이 훨씬 커요. 미국에서는 구인두암의 약 70%가 HPV와 관련돼 있다고 보고, 지금은 HPV가 일으키는 암 중에서 자궁경부암보다 구인두암이 더 흔할 정도예요. 그리고 이 암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몇 배 더 많이 생기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HPV 관련 구인두암이 담배 때문에 생긴 두경부암보다 치료 반응이 좋은 편이라는 거예요. 그래도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뒤에 삼킴이 불편해지고, 입이 마르고, 목소리가 변하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가더라고요. 중환자실에서 수술 직후 환자분들을 보면, 결국 제일 좋은 건 애초에 걸리지 않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항문암은 치질인 줄 알고 넘기기 쉬워요
항문암은 흔한 암은 아니지만, 90% 가까이가 HPV와 관련돼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특히 HIV 감염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분들에게서 위험이 훨씬 높고요.
항문암 전 단계를 항문 상피내 종양(AIN)이라고 부르는데, 항문 안쪽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상태를 말해요. 이 단계에서 찾으면 암으로 진행하기 전에 치료할 수 있어서, 위험군이라면 담당 의사와 선별검사 이야기를 꼭 나눠 보셨으면 해요.
항문암의 증상은 출혈, 가려움, 통증, 멍울, 배변 습관 변화처럼 치질과 아주 비슷해요. 그래서 민망하기도 하고, 치질 연고 바르면서 몇 달씩 버티는 분들이 많죠. 연고를 발라도 나아지지 않거나 멍울이 점점 커진다면 그건 한 번 확인해 볼 신호예요.
간호사로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
HPV는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스쳐 가는 흔한 바이러스예요. 대부분은 조용히 사라지고, 일부만 오래 남아 문제를 일으키죠. 그 일부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백신이고, 이미 감염이 생겼다면 사마귀나 목, 항문의 작은 변화를 그냥 넘기지 않는 게 두 번째 방법이에요.
아들을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올해부터 12세 남자아이도 무료로 맞을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 두세요. HPV 백신은 남자아이 본인의 목과 항문, 생식기를 지키는 백신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20대, 30대 남성분들이라면 목에 만져지는 멍울이나 오래가는 목 통증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중환자실에서 만나는 것보다 외래에서 일찍 만나는 게 훨씬 좋으니까요. 다음 2편에서는 여성 HPV와 자궁경부 검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 볼게요.
참고자료
-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증 정보
- 질병관리청, 2026년 HPV 국가예방접종 12세 남아 확대 시행 안내
- CDC, HPV Vaccine Recommendations
- CDC, HPV and Men / HPV and Oropharyngeal Cancer
- National Cancer Institute, HPV and Cancer
개인 경험과 중환자실 관찰을 바탕으로 쓴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병원 시스템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