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병원에서 일하면서 새 환자를 받으면 제일 먼저 과거 병력(history)을 쭉 훑어보게 되는데요. 의외로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diverticulosis, 우리말로 게실증이에요. 심장 때문에 입원한 분이든 수술 후에 올라온 분이든, 나이가 좀 있는 환자분이면 히스토리 한 줄에 이 단어가 조용히 적혀 있는 경우가 정말 흔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도 "대장내시경 했는데 게실이 있대, 이거 괜찮은 거야?" 하는 질문을 꽤 자주 받아요. 결과지에 낯선 단어가 적혀 있으면 괜히 불안해지는 게 당연하죠.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답부터 먼저 드리고, 게실염과 게실증의 차이, 생기는 이유, 그리고 가장 무서운 장출혈 상황까지 차근차근 정리해 볼게요.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은 괜찮아요
내시경에서 게실이 "발견만" 된 거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게실은 대장 벽의 약한 부분이 바깥쪽으로 작게 볼록 튀어나와 생긴 꽈리 모양의 주머니인데, 이게 있다는 것 자체는 병이라기보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장의 변화에 가깝거든요. 실제로 국내 보도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절반 정도에서 게실이 확인되고, 85세 이상이 되면 65%까지 올라간다고 해요. 열 명 중 여섯 명 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니까, 생각보다 훨씬 흔한 소견이죠.
대부분은 평생 아무 증상 없이 지나가요. 염증이 생기는 경우는 게실을 가진 사람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고요. 다만 "괜찮다"는 게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게실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생활습관을 조금 손보고, 어떤 증상이 생기면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알아두는 게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게실증과 게실염은 이름은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상태예요
게실증(Diverticulosis)은 말 그대로 대장에 게실이 "있는" 상태를 말해요. 주머니만 있고 염증은 없는 상태라서 대부분 증상이 없고, 내시경이나 CT를 찍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다예요. 앞에서 말한 환자 히스토리에 흔하게 적혀 있는 게 바로 이쪽이고요.
반면 게실염(Diverticulitis)은 그 주머니 안에 염증이나 감염이 생긴 상태예요. 주머니 입구에 변이나 찌꺼기가 끼면서 안쪽 압력이 올라가고, 벽에 미세한 손상이 생기면서 염증으로 번지는 거죠. 이때는 확실히 아파요. 서양인은 주로 왼쪽 아랫배(S결장)에 게실이 많아서 왼쪽 아랫배 통증이 전형적인데,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전통적으로 오른쪽 대장에 게실이 많은 편이라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면서 맹장염(충수염)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열이 나고, 메스껍고, 배를 누르면 아프고, 변비나 설사가 같이 오기도 하고요.
쉽게 정리하면 게실증은 "주머니가 있는 상태", 게실염은 "그 주머니에 불이 난 상태"라고 기억하시면 돼요.

게실이 생기는 이유는 장 속 압력과 약해진 장벽 때문이에요
대장 벽에는 혈관이 근육층을 뚫고 지나가는 부위가 있는데, 이 부분이 구조적으로 약해요. 나이가 들면 장벽 자체의 탄력도 떨어지고요. 여기에 변이 단단하고 양이 적으면 대장이 변을 밀어내려고 더 세게 수축하게 되고, 장 안쪽 압력이 높아지면서 약한 부위가 바깥으로 밀려 나오는 거예요. 풍선의 얇은 부분이 먼저 부풀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유전적인 체질도 영향을 주고,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단, 비만, 운동 부족, 흡연 같은 생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요. 예전에는 주로 서양 질환으로 여겨졌는데, 우리나라도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꾸준히 늘고 있고, 서양처럼 왼쪽 대장 게실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고 하더라고요.
한번 생긴 게실은 없어지지 않고, 개수는 늘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미 생긴 게실이 저절로 들어가지는 않아요. 그리고 장 속 압력을 높이는 습관이 그대로라면 나이가 들면서 개수가 더 늘어날 수 있고요. 그래서 게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시점부터 관리를 시작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이미 있는 주머니를 없앨 수는 없어도, 새로 생기는 걸 줄이고 거기에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게실염도 한 번 앓고 나면 재발할 수 있어요. 대략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는 다시 게실염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재발이 잦거나 합병증이 있었던 경우에는 해당 부위 대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고려하기도 해요.
게실 자체가 암이 되지는 않아요, 다만 확인은 필요해요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하실 텐데요. 게실이 시간이 지나서 대장암으로 변하는 건 아니에요. 게실과 대장 용종은 생기는 원리 자체가 다르거든요. 용종은 장 안쪽 점막에서 자라나는 덩어리라서 일부가 암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게실은 장벽이 바깥으로 밀려난 주머니라서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왜 확인이 필요하냐면, 게실염과 대장암이 CT에서 비슷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에요. 장벽이 두꺼워지고 주변에 염증이 있는 모습이 서로 닮아서, 게실염 진단을 받고 회복한 뒤 몇 주 지나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해서 혹시 숨어 있는 암이 없는지 확인하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농양이나 천공 같은 합병증이 있었던 게실염이라면 이 확인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하고요. 의사가 "염증 가라앉으면 내시경 한번 하자"고 하면 귀찮더라도 꼭 받으시길 바라요.
치료가 필요한 건 게실증이 아니라 게실염이에요.
증상이 없는 게실증은 따로 약을 먹거나 시술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식이섬유와 수분을 충분히 챙기고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게 치료이자 예방이죠.
게실염은 상황에 따라 치료가 달라져요. 염증이 가볍고 합병증이 없으면 집에서 장을 쉬게 하면서 맑은 유동식부터 시작해 천천히 식사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회복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는 무조건 항생제를 썼는데, 최근 미국소화기학회(AGA) 가이드라인에서는 가벼운 게실염이면 환자 상태에 따라 항생제 없이도 지켜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열이 높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거나, 통증이 심하면 입원해서 금식하고 수액과 항생제 치료를 받게 돼요.
문제는 게실염을 그냥 참고 넘겼을 때예요. 염증이 심해지면 고름 주머니인 농양이 생기고, 더 진행하면 장에 구멍이 나는 천공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천공이 되면 장 내용물이 배 안으로 새면서 복막염이 생기는데, 이건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장을 잘라내고 일시적으로 장루(배에 변 주머니를 다는 것)를 만들어야 하기도 하고요. 염증이 반복되면서 장이 좁아지는 협착이나, 방광 같은 옆 장기와 길이 뚫리는 누공이 생기기도 해요. 소변에 공기 방울이나 변이 섞여 나오는 증상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배가 계속 아픈데 "좀 지나면 낫겠지" 하고 버티는 건 정말 위험해요.
장출혈은 게실염보다 게실증에서 더 흔하게 생겨요
많은 분들이 "게실염이 심해지면 피가 나는 건가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순서가 조금 달라요. 게실 출혈은 염증이 없는 게실증 상태에서 더 흔하게 생기거든요. 게실 주머니가 생기면서 그 옆을 지나가는 작은 혈관이 늘어나고 얇아지는데, 이 혈관이 어느 순간 터지면서 출혈이 나는 거예요. 게실염은 주로 통증과 발열로 나타나고, 큰 출혈로 이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어요.
게실 출혈의 특징은 "아프지 않다"는 거예요. 배가 아프지도 않은데 갑자기 변기에 선홍색이나 검붉은 피가 왈칵 쏟아지는 식이라서 처음 겪는 분들은 정말 크게 놀라시죠. 대부분은 저절로 멈추지만, 양이 많으면 짧은 시간에 혈압이 떨어질 수 있어요. 특히 아스피린이나 항응고제, 진통소염제를 드시는 분들은 출혈 위험이 더 높고요. 앞에서 말했듯이 아시아인에게 많은 오른쪽 대장 게실이 출혈과 더 관련이 깊다는 보고도 있어요.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하부위장관 출혈(lower GI bleeding)로 올라오는 환자분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원인을 찾아보면 게실 출혈인 경우가 꽤 있어요. 집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피를 보고, 일어서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진 채 실려 오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런 분들은 혈압과 맥박을 계속 지켜보면서 수혈을 하고, 출혈 부위를 찾기 위해 응급 내시경이나 CT 혈관조영술을 하기도 해요. 내시경으로 지혈이 안 되면 혈관조영술로 출혈 혈관을 막는 색전술을 하거나, 드물게는 수술까지 가게 되고요. 그때마다 느끼는 건, 집에서 조금만 더 빨리 출발했으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에요.

게실염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생활 습관들
가장 대표적인 건 식이섬유가 부족한 식단이에요. 흰 쌀, 흰 빵, 가공식품 위주로 먹고 채소나 과일, 통곡물, 콩류를 잘 안 먹으면 변이 작고 단단해져서 장이 더 세게 힘을 줘야 하거든요. 여기에 붉은 고기와 가공육을 자주 먹는 식습관도 게실염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많아요. 물을 적게 마시는 것도 변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한몫하고요.
앉아만 있고 잘 안 움직이는 생활, 복부비만, 흡연도 위험 요인으로 꼽혀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시는 게 약인데요, 진통소염제(NSAIDs)를 습관적으로 드시거나, 마약성 진통제나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하면 게실염이나 출혈 위험이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어요. 마약성 진통제는 변비까지 같이 오기 쉬워서 장에 이중으로 부담이 가죠. 변비가 있어서 화장실에서 오래 힘주는 습관도 장 속 압력을 높이니까 같이 고쳐 주시는 게 좋아요.
예전에는 "게실 있으면 씨앗, 견과류, 팝콘은 먹지 마라"는 말이 흔했어요. 작은 알갱이가 주머니에 끼어서 염증을 일으킨다는 이유였는데, 대규모 연구에서는 오히려 견과류나 팝콘을 먹는 사람에게서 게실염이 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이에요. 오히려 좋은 식이섬유 공급원이니까 꼭꼭 씹어서 드시면 돼요.
피가 쏟아질 때는 이렇게 움직이세요
항문에서 피가 나올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양과 몸 상태예요. 휴지에 살짝 묻어나는 정도의 선홍색 피는 치질인 경우도 많지만, 변기 물이 붉게 물들 만큼 피가 쏟아지거나, 검붉은 피나 핏덩어리가 반복해서 나온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가셔야 해요.
여기에 어지럽거나, 일어설 때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차고 얼굴이 창백해진다면 이미 피가 꽤 빠져나갔다는 신호예요. 이럴 때는 직접 운전해서 가지 마시고, 바로 119에 전화하세요. 운전 중에 의식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화장실에서 혼자 일어서지 말고 바닥에 눕는 게 안전해요. 실제로 화장실에서 일어나다가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많아요. 다리를 살짝 올려두면 뇌로 가는 혈류를 조금이나마 돕고요.
혹시 수술이나 내시경이 필요할 수 있으니 음식이나 물은 먹지 않고 기다리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병원에 가면 꼭 물어보는 게 있는데, 지금 드시는 약이에요. 특히 아스피린, 클로피도그렐 같은 항혈소판제나 와파린, 엘리퀴스 같은 항응고제를 드시는지가 치료 방향을 크게 바꾸거든요. 약 봉투나 약 이름을 사진으로 찍어 두셨다가 보여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돼요. 피가 언제부터, 얼마나, 어떤 색으로 나왔는지도 기억해 두시고요. 경황이 없으면 변기 사진을 한 장 찍어 두는 것도 방법이에요. 의료진 입장에서는 그만큼 정확한 정보가 없더라고요.
출혈이 멈췄다고 해서 안심하고 그냥 넘어가시면 안 돼요. 게실 출혈은 멈췄다가 다시 나는 경우가 꽤 있고, 혹시 다른 원인일 수도 있으니 반드시 진료를 받고 원인을 확인하셔야 해요.
게실은 장이 보내는 작은 경고등이에요
내시경 결과지에 게실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면,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냥 흘려보내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은 평생 조용히 지나가지만, 식습관과 생활습관에 따라 게실염이나 출혈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채소와 통곡물로 식이섬유를 채우고, 물을 넉넉히 마시고, 꾸준히 걷고, 진통소염제는 습관처럼 먹지 않는 것. 이 정도만 지켜도 장이 훨씬 편해질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프면서 열이 나거나, 피가 쏟아진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병원으로 가세요.
참고자료
대장 게실 질환의 진단 및 치료 (국내 학술지 리뷰 논문, PMC 게재)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2286196
브라보마이라이프, 노화와 식습관이 만드는 장 건강 경고신호 '게실 질환' —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6021
NIDDK, Diverticular Disease — https://www.niddk.nih.gov/health-information/digestive-diseases/diverticulosis-diverticulitis
American Gastroenterological Association, Clinical Practice Update: Medical Management of Colonic Diverticulitis (2021)
개인 경험과 중환자실 관찰을 바탕으로 쓴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병원 시스템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