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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찾으러 왔더라, 그 순간마다 드는 두려움

50대가 되면서 찾아온 브레인 포그, 그리고 자주 병동에서 마주치는 치매 환자들 사이에서 든 생각

 

5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뭔가를 하러 방으로 걸어가다가 딱 멈춰 서서 "내가 뭘 찾으러 왔더라" 하고 한참을 서성인다. 대부분은 몇 초 지나면 기억이 돌아오지만, 그 몇 초 동안 드는 두려움은 매번 꽤 크다. 나도 혹시.

이런 생각이 유난히 크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자주 치매 환자들을 본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증상이 심한 분은 정말 다섯 살 아이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경미해서 처음 몇 마디 나눠 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가족의 증언과 전문가의 인지 기능 검사가 있어야만 정확히 확인된다. 그런데 그분들의 이력을 보면 미국 명문대 수학 교수, 과학자, 사업가처럼 평생 머리를 써 온 분들이 적지 않다. 왜 이런 분들도 예외가 아닐까, 막을 방법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늘 남는다.

 


브레인 포그와 초기 치매, 뭐가 다른가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안심이 된 부분이 있다. 브레인 포그는 대부분 일시적이고,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 피로, 호르몬 변화 같은 원인이 해결되면 함께 좋아진다는 점이다. 반면 초기 치매는 지속적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빠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결국 일상생활을 스스로 유지하는 능력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물건을 잠깐 어디 뒀는지 잊는 것과, 물건의 용도 자체를 잊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공과금 처리 같은 걸 아예 못 하게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처럼 잠깐 멈췄다가 곧 기억이 돌아오고 일상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는, 걱정할 만한 신호라기보다는 흔한 나이 듦의 한 조각에 가깝다.

왜 머리를 많이 쓴 사람들도 걸리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교육 수준이 높고 평생 복잡한 일을 해온 사람일수록 뇌가 손상을 견디는 여력이 크다는 이론이다. 존스홉킨스의 연구에서도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알츠하이머병 자체를 피해가는 건 아니지만, 같은 정도의 뇌 손상이 있어도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일종의 "여유분"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여유분을 다 써버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더 가파르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즉 수학교수님이나 과학자분들이 오랫동안 멀쩡해 보였던 건 병이 없어서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저장고가 컸기 때문이고, 정작 증상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혼자 지내시면 왜 더 늦게 발견될까

내가 궁금했던 또 하나, 혼자 사시는 환자분들의 경우 증상이 정말 더 가려지는 걸까 하는 부분도 근거가 있었다. 한 연구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의 경우 치매 진단이 늦어지거나 아예 놓치게 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매일 옆에서 지켜보며 미세한 변화를 알아챌 가족이나 이웃이 없으니,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할 계기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 고립은 발견을 늦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인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존스홉킨스가 9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의 치매 발병 위험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27%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

초기 단계에서는 증상이 아주 미묘해서 본인도, 주변도 알아채기 어렵다. 가장 먼저 오는 건 최근 있었던 일을 잊는 것이다. 며칠 전 나눈 대화나 방금 둔 열쇠, 안경 위치를 자꾸 잊는다. 여기에 더해 계획을 세우거나 복잡한 결정(예를 들어 돈 관리)을 내리는 게 예전보다 힘들어지고, 하려던 말이 잘 안 떠올라 머뭇거리는 일이 늘어난다. 이 시기엔 대부분 혼자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주변에서도 "요즘 좀 깜빡하네" 정도로만 느낀다.

중기로 넘어가면 변화가 훨씬 뚜렷해진다. 오늘이 며칠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리고, 평소 좋아하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오후나 저녁 시간에 유독 불안해하고 서성이거나 초조해하는 경우도 흔하고, 같은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 단계가 가장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말기가 되면 대화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걷기, 삼키기 같은 기본적인 신체 기능에도 도움이 필요해지며,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보내게 된다.

치료는 어디까지 와 있나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메만틴 같은 약들은 20년 넘게 쓰여 온 약인데, 이들은 증상을 완화해 줄 뿐 병의 진행 자체를 멈추지는 못한다. 정말 큰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다. 2023년 미국에서 승인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2024년 승인된 키선라(성분명 도나네맙)는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직접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초기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는 인지 저하 속도를 27~35% 정도 늦추는 효과가 확인됐다. 이건 이전의 증상 완화제와는 결이 다른, 병의 진행 경과 자체를 바꿔 보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아직 완치제는 아니다. 이 치료는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경증 치매 환자에게만 적용되고, 뇌부종이나 미세출혈 같은 부작용(ARIA) 위험이 있어서 특히 ApoE4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래도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 치료제들이 3상 임상에 들어가 있고, 당뇨약으로 쓰이던 GLP-1 계열 약물을 뇌 염증 완화 목적으로 재활용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 치료의 방향 자체는 "증상 관리"에서 "병의 진행을 늦추는 쪽"으로 확실히 옮겨가고 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예방법

2024년 랜싯 위원회 보고서는 인생 전반에 걸친 14가지 조절 가능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면 전 세계 치매 사례의 약 45%를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여기 포함되는 요인들이 사실 특별한 게 아니다. 어릴 때의 교육 수준, 중년기의 청력 저하와 고혈압, 과음, 비만, 두부 외상, 그리고 노년기의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운동 부족, 당뇨, 콜레스테롤, 시력 저하, 대기오염까지 포함된다.

그러니 집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소박하다. 매일 걷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꾸준히 관리하는 것, 술과 담배를 줄이는 것, 청력이나 시력이 떨어졌다면 방치하지 않고 보청기나 안경으로 바로 교정하는 것, 그리고 우울감이 들 때 혼자 끌어안지 않고 도움을 구하는 것.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포함된다. 핀란드에서 진행된 FINGER 연구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생활습관 개입만으로도 노년기 인지 기능이 실제로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거창한 걸 하나 시작하는 것보다, 이 소박한 것들을 동시에 꾸준히 지키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이 순간들을 무작정 무서워하기보다는, 패턴을 지켜보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잠깐 멈췄다가 금방 기억이 돌아오고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면 그건 흔한 브레인 포그일 가능성이 크다. 대신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늘 하던 일의 순서를 완전히 잊거나, 주변에서 "요즘 좀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 그때는 미루지 않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 들수록 사람들과의 연결을 억지로라도 붙잡아 두려 한다. 그게 병을 막아주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 내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채 줄 사람을 곁에 남겨 두는 일이라는 건 확실하니까.

개인 경험과 중환자실 관찰을 바탕으로 쓴 개인의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병원 시스템이 다를 수 있으니,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