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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생활이 10년을 넘어가던 무렵이었다. 현지인 남편과 살면서 힘든 일이 있어도 "이민 왔으니 당연한 거지"라고 하고 넘겼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가끔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자다가 새벽에 깨서 극심한 공포에 숨이 차고, 내가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밤이 자꾸 반복됐다.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쇼핑몰 주차장에서,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남편이 앞서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한,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감각이 몰려왔다. 나 죽나 지금? 하는 기분. 나중에 간호사가 되고 나서야 그 느낌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 — impending doom, 곧 죽을 것 같은 압도적인 예감.

검사는 다 정상이었다
겁이 나서 남편에게 얘기하고 다음 날 바로 주치의를 찾아가 EKG를 했다. 의사가 결과를 보더니 곧장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스트레스 테스트까지 받았는데,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다시 주치의에게 가서 홀터 모니터로 며칠을 더 기록했다.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몸은 분명 무너지는 것 같은데 검사지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니,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증상은 계속됐다
간호학교 시절, 학과 발표가 있는 날이면 더 심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면 혹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남한테 들릴까 걱정될 정도로 심장이 크게 뛰었다. 문화가 다른 남편과의 결혼생활 그리고 남편은 내 증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간호학 공부까지 겹쳐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5년 정도를 그런 식으로 버텼다. 약은 먹지 않았다. 그냥 죽어라 공부하면서 견뎠다.
몸은 분명 무너지는 것 같은데, 검사지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더 무서웠다.
간호사가 되고서야 알았다, 이게 공황장애였다는 걸
간호 일을 시작하고, 한국 소식을 미디어로 접하면서 '공황장애'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그제야 내가 몇 년간 겪은 게 무엇이었는지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실제로 공황장애는 특별한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몸이 순식간에 '생존 모드'로 돌입하며 심장 두근거림, 호흡곤란, 어지럼증과 함께 '곧 죽을 것 같다'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밀려오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몸이 위험 신호를 잘못 켠 것이지, 심장이나 폐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티는 게 맞을까, 약을 먹는 게 맞을까
많은 사람이 나처럼 고민한다. 나는 약 없이 버텼지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공황장애는 조기에 치료할수록 회복이 빠르고 재발 위험도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치료를 미루고 참기만 하면, 오히려 회복까지 가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실제 치료법을 찾아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권장되는 건 SSRI 계열 항우울제인데, 효과는 좋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2~3주 이상 걸린다. 그래서 급성기에는 효과가 빠른 벤조디아제핀 같은 항불안제를 같이 쓰기도 하는데, 이건 내성이 생기거나 끊었을 때 증상이 다시 튀어 오를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인지행동치료(CBT)는 약과는 결이 다르다 — 반응률이 70~80%나 되고, 약물과 함께 병행하면 재발 확률도 더 낮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나처럼 그냥 버티는 방법도 물론 있다. 다만 그건 가능은 하지만, 회복까지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그 사이 삶의 질이 계속 깎여 나간다는 게 문제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냥 운 좋게 버티게 된 케이스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표 하나, 낯선 상황 하나에도 계속 그 공포와 싸워야 했다. 만약 그때 누군가 "이건 병이고, 치료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해 줬다면 훨씬 빨리, 훨씬 덜 힘들게 지나갔을 거다.
공황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최근 몇 년 새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예전보다 그만큼 이 병에 대해 많이들 알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나처럼 이유도 모른 채 몇 년을 혼자 버티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지금의 나
패닉까지 가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여전히 가끔 그 두려움의 잔상이 스치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무뎌졌다. 다만 요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5년, 굳이 그렇게 혼자 버텨야 했을까. 약이 필요했던 순간에 약을 쓰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냥 치료의 한 방법일 뿐인데 말이다.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게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군데 기사를 다시 찾아봤다. 헬스경향, 정신의학신문, 헬스온뉴스에 실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설명을 보면서, 그때의 내가 얼마나 오래 헤맸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물론 이 글은 내 경험을 정리한 것일 뿐,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다. 혹시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다면, 이 글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시길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