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다람쥐가 보인다던 그 환자, 그리고 술을 못 끊는다는 것의 무게
수술 전 음주가 왜 그렇게 위험한 변수가 되는지, 중환자실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겪은 일이다.
40대 초반 남성 환자였다. 응급으로 손가락 절단 수술을 받았는데, 사실 이 정도 수술이면 회복 후 깁스하고 귀가하거나 일반 병동으로 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는 곧장 우리 중환자실로 옮겨 왔다. 수술 도중 심장에 무리가 와서였다.
입원한 지 24시간쯤 지나서 내가 그를 맡았다. 처음엔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옷을 다 벗기 시작하더니 심전도 케이블을 뜯어내고, 집에 가야 한다며 병실을 서성거렸다. "환자분, 지금은 안 됩니다. 조금만 더 계시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퇴원 절차 봐 드릴게요" 하고 환자를 진정시키고, 의사 선생님께 급히 보고를 드렸다. 환자가 잠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더니 이번엔 문밖에 다람쥐가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 순간 감이 왔다. 이건 알코올 때문이다.
이후로는 시간 단위로, 그다음엔 30분 단위로 초조함이 심해졌다. 결국 경비원과 경찰까지 불렀고, 환자 본인도 자기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너희가 나를 감금했다"라고 소리쳤다. 알고 보니 그는 매일 맥주를 열일곱 캔씩 마시는 알코올 의존 상태였고, 응급 수술이라 술을 끊고 며칠 지나야 한다는 원칙을 지킬 겨를이 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의사 4명, 정신과 의사, 경찰 2명이 다녀갔고 결국 아티반과 페노바르비탈로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 병동에 있던 모두가 위험했다. 환자 자신은 물론, 옆에서 그를 붙잡던 나와 동료들도.

왜 술을 "갑자기 못 마시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가
흔히 술을 끊으면 몸이 좋아질 거라 생각하지만, 오랜 기간 다량으로 마셔온 사람이 급작스럽게 알코올을 끊으면 뇌가 그 공백을 감당하지 못한다. 알코올은 뇌의 억제 신경전달물질(GABA) 수용체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데, 그 자극이 갑자기 사라지면 신경계가 과흥분 상태로 튕겨 올라간다. 진전, 발작, 환각, 그리고 가장 심한 형태인 진전섬망(delirium tremens)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25년 미국 외과학회지(JACS)에 발표된 연구는 이 문제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300만 명의 수술 환자를 분석한 결과, 약 0.5%가 알코올 금단 증후군을 겪었고 그중 상당수가 진전섬망으로 진행됐다. 금단 증후군을 겪은 환자는 호흡부전이나 패혈증 같은 합병증 위험이 37% 더 높았고, 진전섬망까지 간 경우 사망 위험이 40% 증가했다. 입원 기간도 평균 5일 이상 늘어났다.
수술 전에 술을 얼마나 마셔도 되는가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오히려 핵심은 정반대다. 만성적으로 다량 음주해 온 사람이라면, 술을 참는 것 자체가 몸에 부담을 주는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환자 안내 자료에서도 치료받지 않은 알코올 금단이 발작이나 진전섬망, 심하면 사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얼마나 마셔야 하는가"가 아니라 "수술 전에 자신의 음주량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리뷰 논문에서도 알코올 섭취 중단 후 첫 48시간이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는 예방적 약물 투여와 집중 관찰, 그리고 영양 결핍 환자를 위한 티아민 보충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다. 응급 수술처럼 사전에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경우엔 이 창을 그대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내가 겪은 환자가 딱 그런 경우였다.
손 떨림과 이마의 땀, 그리고 CIWA 스케일
그날 이후로 나는 새 환자를 볼 때마다 CIWA-Ar이라는 척도를 습관처럼 떠올리게 됐다. 금단 증상의 심각도를 숫자로 매기는 도구로, 구역질, 불안, 발한, 손 떨림, 촉각·청각·시각 이상, 두통, 초조, 지남력까지 총 10가지 항목을 각각 점수로 매겨 합산한다. 점수가 낮으면 경미한 금단이고, 점수가 오를수록 진전섬망에 가까워진다.
이 중 손떨림과 발한은 굳이 환자에게 묻지 않아도 눈과 손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이다. 환자에게 팔을 앞으로 뻗고 손가락을 펴 보라고 하면 미세한 떨림부터 육안으로 확 드러나는 큰 떨림까지 단계가 보인다. 발한은 장갑을 낀 손으로 환자의 이마를 살짝 짚어 보면 감이 온다. 손바닥이 살짝 축축한 정도인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정도인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접촉 하나가 몇 시간 뒤 상태가 얼마나 나빠질지를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이마를 짚으면서 동시에 몇 가지를 더 물어본다. 피부가 간지럽거나, 따끔거리거나, 뭔가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드는지. 이건 촉각 이상을 확인하는 질문이다. 빛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지는지도 묻는데, 이런 시각적 예민함은 시각 이상 항목에 포함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게 보이거나,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는지. 그 환자가 문밖에 다람쥐가 지나간다고 했던 게 바로 이 시각적 환각 항목에 해당했던 셈이다. 청각적으로도 마찬가지로 없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점수가 올라간다. 이 질문들을 하나씩 던져보면, 환자가 지금 얼마나 깊이 금단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맡았던 그 환자도 지나고 보니 초반부터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는 그냥 긴장한 걸로 넘겼는데, 지금이라면 그 떨림 하나만으로도 CIWA 점수를 매기고 더 자주 들여다봤을 것이다. 점수가 8점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조기 개입이 진전섬망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그 뒤로야 몸으로 배웠다.
간호사로서 배운 것
그날 이후로 나는 새로 들어오는 환자의 음주력을 훨씬 꼼꼼히 확인하게 됐다. 하루 몇 캔, 며칠에 한 번, 마지막으로 마신 게 언제인지.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질문 하나가 24~48시간 뒤 병동에서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 준다. 술을 마신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환자도 많은데, 그게 오히려 의료진의 대응을 늦추고 환자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