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콜라이(대장균, E. coli)라는 이름만 들으면 식중독이나 오염된 음식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대장균은 건강한 사람의 장 속에 늘 존재하는 균이다. 대부분의 대장균 균주는 우리 몸에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준다. 문제는 이 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즉 대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혹은 애초에 몸에 해로운 특정 균주였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콜라이가 주는 이득
대장 속 대장균은 소화를 돕고 비타민K 합성에 관여한다. 비타민K는 혈액 응고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데, 우리가 먹는 음식만으로는 부족한 양을 장내 대장균 같은 세균들이 만들어서 보충해 준다. 또한 대장균은 대장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해로운 균이 자리 잡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방어선 역할을 한다. 장내 유익균 생태계가 잘 유지되면, 대장균은 오히려 우리 몸을 지켜주는 정상 세균총의 일원인 셈이다.
문제는 '위치'다
같은 대장균이라도 대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가장 흔한 경로가 요로다. 대장균은 항문과 요도가 가까운 여성에게 특히 방광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는데, 방광에 자리 잡으면 방광염을 일으키고, 여기서 더 방치되면 요관을 타고 신장까지 거슬러 올라가 신우신염으로 번진다. 나도 예전에 이 과정을 직접 겪은 적이 있는데, 처음엔 단순한 잔뇨감이었던 게 며칠 만에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으로 번졌던 걸 생각하면, 대장균이 위치를 옮기는 게 얼마나 빠르게 심각해질 수 있는지 실감이 난다.
더 심각한 경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균이 혈류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신장이나 복강, 요로 등에서 시작된 감염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으면 대장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 패혈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져 있거나 이미 다른 1차 감염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이 패혈증의 사망률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균이 피를 타고 온몸을 돌면서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패혈성 쇼크로 이어질 수 있고, 이때는 즉각적인 항생제 치료와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
음식으로 걸리는 이콜라이는 또 다른 이야기
지금까지 말한 건 원래 몸 안에 있던 대장균이 자리를 옮겨서 생기는 문제였다면, 흔히 뉴스에 나오는 '식중독 대장균'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이건 애초에 몸에 없던, 밖에서 들어온 병원성 대장균이다. 이 병원성 대장균은 독소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임상 증상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장출혈성 대장균, 흔히 O157:H7이라고 부르는 균이다.
이 균은 장 점막에 벽돌처럼 달라붙어 강한 독소를 뿜어내면서 심한 출혈성 장염을 일으킨다. 충분히 익히지 않은 고기, 씻지 않은 채소나 샐러드, 살균되지 않은 우유를 통해 옮을 수 있고, 사람 사이에서 직접 전파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감염이 단순히 심한 설사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어린아이에게서는 용혈성 요독증후군이라는 심각한 합병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상태가 되면 적혈구가 파괴되고 신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노약자와 아이들이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이유
생후 1개월 이하의 신생아는 특정 대장균 균주에 의해 수막염 같은 심각한 중추신경계 감염까지 겪을 수 있다. 면역 체계가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다. 2년 미만, 특히 6개월 이하의 영아는 장병원성 대장균에 취약해서 구토, 설사, 복통, 발열 같은 증상이 어른보다 훨씬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어른이나 자란 아이들은 이미 방어 면역이 형성돼 있어 같은 균에 노출돼도 큰 증상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노년층 역시 취약한 그룹이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만성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장균이 요로에서 시작해 신장, 혈류까지 번지는 속도가 젊은 사람보다 빠를 수 있다. 앞서 말한 신우신염이나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위험도 노년층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노약자와 아이들에게서는 단순한 배뇨 불편감이나 미열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병원에서 자주 보는 노년층 UTI, 대부분 이콜라이다
실제로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노약자분들이 낙상이나 다른 이유로 입원하시는 경우 못지않게, 요로감염(UTI) 자체가 입원 사유가 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리고 그 원인균을 검사해 보면 상당수가 대장균이다. 어떻게 이렇게 흔하게 발생하는지, 그 경로를 보면 몇 가지 공통된 이유가 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경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장에 있던 대장균이 항문 주변, 회음부를 거쳐 요도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년층에서는 이 과정이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잘 일어난다. 거동이 불편해 위생 관리가 어려워지고, 기저귀를 사용하거나 장시간 누워 지내는 경우 회음부 주변이 세균에 오래 노출된다. 방광을 완전히 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남성은 전립선 비대증으로, 여성은 방광탈출증 같은 골반저 기능 저하로 소변이 방광에 남게 되고, 이렇게 고인 소변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여기에 수분 섭취 부족도 큰 몫을 한다. 노년층은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게 번거로워 일부러 물을 덜 마시는 경우가 흔한데, 소변량이 줄면 세균을 씻어내는 자연스러운 배출 기능도 함께 떨어진다.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으면 면역 기능 자체가 저하돼 있어 같은 양의 균에 노출돼도 감염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도뇨관(카테터)을 삽입하고 있는 환자라면, 카테터 자체가 세균이 방광까지 직행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크게 올라간다.
더 조심스러운 부분은, 노년층에서는 요로감염이 와도 전형적인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이라면 배뇨통이나 빈뇨를 호소하겠지만, 어르신들은 그 대신 갑자기 혼란스러워하거나 평소보다 기력이 없어지는, 섬망에 가까운 증상으로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족들이 "치매가 갑자기 심해졌나" 하고 넘기다가 뒤늦게 요로감염이 발견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앞서 말한 신우신염, 더 나아가 패혈증까지 진행될 수 있어서 병원에서는 노년층 환자의 갑작스러운 의식 변화가 있을 때 요로감염 여부부터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에서 조심할 것들
음식으로 인한 감염을 막으려면 고기는 속까지 완전히 익혀 먹고, 채소나 샐러드는 흐르는 물에 꼼꼼히 씻어야 한다. 살균되지 않은 우유나 주스는 피하고, 조리 도구는 날음식과 익힌 음식을 구분해서 쓰는 게 좋다. 손 씻기는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특히 화장실을 다녀온 후, 음식을 만지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요로감염을 예방하려면 소변을 오래 참지 않는 것, 물을 충분히 마셔서 세균이 자연스럽게 씻겨 나가도록 하는 것, 배뇨 후 앞에서 뒤 방향으로 닦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미 방광염 증상이 있는데 며칠씩 참고 넘기는 건 위험하다. 단순 방광염이 신장까지 번지고, 거기서 혈류까지 침투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이콜라이는 그 자체로 적도, 아군도 아니다. 어디에 있느냐, 어떤 균주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평소엔 조용히 우리 몸을 지켜주다가도, 자리를 벗어나거나 위험한 균주를 만나면 순식간에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면 좋겠다.
참고자료
서울아산병원 - 대장균 감염(Escherichia coli infection):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617
서울아산병원 -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2127
MSD 매뉴얼(일반인용) - 대장균 감염: https://www.msdmanuals.com/ko/home/감염/박테리아-감염-그람-음성-박테리아/대장균-감염
질병관리청 - 병원체생물안전정보(Escherichia coli): https://www.kdca.go.kr/board/board.es?mid=a20302111410&bid=0064&act=view&list_no=368624&tag=&nPage=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