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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던 눈빛

간호학교 시절, 정신의학 실습을 두 곳에서 했다. 하나는 사립 정신병원, 다른 하나는 주립(국립) 정신병원이었다. 같은 정신의학 실습이었지만 두 곳에서 만난 환자들의 얼굴은 완전히 달랐다.

사립 정신병원은 보험이나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 적용을 받는 환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약물이나 알코올 디톡스, 혹은 재발(relapse)로 다시 입원한 경우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경위가 비교적 분명했고,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도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결국 본인의 의지가 회복의 핵심이었고, 의료진은 그 의지를 지지해 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런데 주립 정신병원에서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사립은 대부분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면, 주립은 이민자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그리고 조현병(schizophrenia) 진단을 받은 환자들 중에는 유독 가난한 현지인과 이민자가 많았다. 그중엔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40대가 넘어 간호를 시작한 나는,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국 여성 환자를 만났다. 아주 어릴 때 이민 와서 한국어도 어눌했고, 영어로도 소극적으로만 대화가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분의 눈빛이었다. 늘 초점이 흐릿하고, 뭔가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차트를 확인해 보니 진단명은 조현정동장애(schizoaffective disorder)였다. 책으로만 습득한 정신장애가 너무 생소했다.

비슷한 눈빛을 가진 다른 환자들, 특히 이민자 배경을 가진 이들의 차트를 하나둘 확인해 보니 상당수가 같은 진단, 조현정동장애를 받고 있었다. 이민자, 저소득층이라는 공통점이 눈에 밟혔다. 다들 희망을 안고 이 땅에 왔을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조현병과 조현정동장애, 어떻게 다를까

두 진단은 이름도 비슷하고 증상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헷갈리기 쉽다. 가장 쉽게 구분하자면 이렇다.

조현병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나 행동, 감정 표현이 둔해지는 음성 증상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핵심이다. 이런 증상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되고, 그중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는 활성기가 최소 1개월 이상 있어야 진단된다. 기분(우울이나 조증) 문제가 있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요소다.

조현정동장애는 이 조현병의 정신병적 증상에 더해, 우울증이나 조증 같은 뚜렷한 기분장애 삽화가 상당 기간 함께 나타나는 경우다. 여기서 핵심 감별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망상이나 환청 같은 정신병적 증상이 기분 증상 없이도 2주 이상 단독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조건이다. 즉 기분이 멀쩡한 시기에도 환청이나 망상이 남아 있어야 조현정동장애로 진단된다. 반대로 정신병적 증상이 오직 기분삽화 기간에만 나타난다면, 이건 정신병적 양상을 동반한 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쪽으로 분류된다.

쉽게 말하면, 조현병은 '정신병적 증상이 중심'이고, 조현정동장애는 '정신병적 증상과 기분장애가 상당 기간 함께, 그리고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 임상에서는 이 경계가 애매한 경우도 많아서, 초기엔 다른 진단을 받았다가 시간이 지나며 조현정동장애로 재진단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민자와 화병, 정말 연관이 있을까

확실한 인과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민자 집단에서 정신질환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는 실제로 존재한다. 영국에서 진행된 한 코호트 연구에서는 특정 이민자 집단이 백인 영국인보다 정신병 위험이 유의하게 높았고, 그 요인으로 인종차별, 고립감, 소외감 등이 지목됐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적응해야 하는 부담, 경제적 어려움,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이 겹겹이 쌓이면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권 이민자들은 감정을 신체 증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울한 감정을 두통으로, 불안을 불면이나 가슴 답답함으로 느끼는 식이다. 한국어에는 아예 '화병'이라는 고유한 표현이 있을 정도로, 화나 슬픔을 제때 풀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하는 문화적 특성이 있다. 내가 만났던 그 한국 여성분도, 현지인 남편과 결혼해 자녀 둘을 낳았지만 아이들은 커서 영어로만 대화하고, 본인만 이 낯선 땅에서 홀로 서 있는 듯한 시간을 오래 보내셨을 거라 짐작한다. 그 감정을 풀어낼 곳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짐작만 할 뿐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정신질환의 발병이 순전히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낯선 땅에서 언어도, 감정을 풀어낼 자리도 마땅치 않은 채로 오랜 시간을 버텨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유독 많이 마주하게 되는 진단명 앞에서, 나는 단순히 '병'으로만 보기 어려운 무게감을 느꼈다.

참고자료

MSD 매뉴얼(일반인용) - 조현정동장애: https://www.msdmanuals.com/ko/home/정신-건강-장애/조현병-및-관련-장애/조현-정동-장애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조현병: https://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356
메디칼트리뷴 - 영국 이민자 정신질환 위험 높아: http://www.medical-tribu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07
미주 한국일보 - 이민사회 위협하는 정신질환: http://m.koreatimes.com/article/20050715/257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