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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시던 그분이 페이스메이커를 거부했던 이유
몇 년 전 야간 근무 때 만났던 환자분 이야기를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60대 백인 여성분이었는데, 이웃이 놀러 왔다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신 걸 발견해서 응급실로 실려 오셨다. 정신을 차리신 후에도 본인이 왜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냥 눈을 떠보니 차가운 타일 바닥이었다고 하셨다.
검사가 하나씩 진행되면서 원인이 드러났다. 심박수가 너무 느렸고, 리듬도 일정하지 않아 가끔 툭툭 건너뛰는 경우가 있었다. 그 순간순간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지면서 실신, 그러니까 syncope가 왔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신 거였다. EKG를 찍기 전까지는 본인도, 주변 누구도 심장 리듬이 이상하다는 걸 몰랐다. 나중에 여쭤보니 최근 들어 몇 번 어질어질하고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냥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셨다고 했다.
이게 사실 굉장히 흔한 패턴이다. _sick sinus syndrome_이라고 부르는 동방결절 기능 이상은 노화로 인한 결절 조직의 섬유화가 흔한 원인 중 하나인데, 증상이 어지럼증, 피로감, 실신 전조 증상처럼 애매하게 나타나다 보니 본인도 그냥 컨디션 문제로 넘기는 경우가 정말 많다. 심전도나 홀터 모니터로 잡아내기 전까지는 진단 자체가 까다로운 병이라 더 그렇다.
결국 심장내과 팀이 와서 페이스메이커 삽입을 권했고, 다음 날 아침 시술하기로 얘기가 끝나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분이 갑자기 거부하셨다. 페이스메이커가 뭔지도 모르겠고, 겁이 나고, 의사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는 거였다.

왜 갑자기 시술을 거부하셨을까
사실 이해가 됐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매일 쓰는 말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동방결절", "서맥", "chronotropic" 같은 단어들이 낯설고 무섭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냥 옆에 앉아서 정말 유치원생을 가르치듯 그림을 그려 가면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드렸다. 심장이 어떻게 박자를 놓치는지, 그게 왜 갑자기 쓰러지는 걸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이번엔 이웃분이 우연히 오셔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그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최대한 그분의 삶에 맞춰서 풀어드렸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낙상이 발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될 위험이 훨씬 크다. 하루 중 열 시간 넘게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 계신 경우가 많다 보니, 낙상이 목격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90대 어르신들을 추적한 한 코호트 연구에서는 낙상의 82%가 혼자 계실 때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골든타임을 놓치면, 단순한 낙상이 훨씬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흉터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실제로는 쇄골 아래로 작은 절개 하나만 들어가고 국소마취로 진행되는 시술이라 생각보다 훨씬 부담이 적다는 것도 말씀드렸다. 배터리는 보통 8년에서 12년 정도 가고, 요즘 나오는 기종들은 MRI도 웬만하면 다 찍을 수 있어서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없다는 것도.
다음 날, 그분은 결국 페이스메이커 삽입에 동의하셨고 시술도 잘 끝났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에 손수 그리신 감사 카드를 받았다. 그 카드를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충분한 설명이 결국 환자의 안전을 지킨다
이 일을 겪고 나서 확실히 느낀 게 있다. sick sinus syndrome처럼 서맥과 함께 실신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 혹은 방실차단이 있는 경우는 페이스메이커가 명확하게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실제로 페이스메이커를 삽입한 환자군에서 실신 재발률이 확연히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들도 여럿 있다. 특히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특히, 독거 어르신들에게는 이게 단순히 "권장 시술" 수준이 아니라 다음 실신이 마지막이 되지 않게 해주는 장치라는 걸 더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정작 환자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리 명확한 적응증이라도 환자는 겁부터 먹고 거부하게 된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시술"이라도, 환자 입장에서는 본인 몸에 낯선 기계를 넣는 무서운 결정이니까. 그래서 수술이나 시술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의학 용어를 걷어내고, 그 사람의 눈높이와 생활 맥락에 맞춰서 왜 필요한지, 안 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실제로 삽입 후에는 일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충분히 설명해 드리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결국 그 환자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니까.
참고: NIH StatPearls (Sick Sinus Syndrome), American Family Physician,
PubMed(Pacing interventions for falls and syncope in the elder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