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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유난히 익숙한 얼굴들이 있어요. 몇 달 전에 다리 혈관 수술을 받고 올라왔던 분이 또 같은 다리로, 혹은 반대쪽 다리로 다시 수술을 받고 들어오시는 경우죠. 처음엔 "어, 이분 전에 뵌 것 같은데?" 하고 차트를 열어보면 역시나 이전 입원 기록이 줄줄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그분들 기록을 넘기다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흡연이에요.

오늘은 다리 혈관이 막히는 병, 그리고 그 병과 담배가 얼마나 끈질기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수술 후 병동에서 제가 실제로 어떤 걸 보고 확인하는지, 그리고 풍선확장술부터 절단까지 치료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도 함께 풀어볼게요.

다리 혈관이 막히는 병, 말초동맥질환이라고 불러요

심장에 피를 주는 관상동맥이 좁아지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오잖아요. 똑같은 일이 다리로 가는 동맥에서 벌어지는 게 말초동맥질환(PAD, Peripheral Artery Disease)이에요. 혈관 벽 안쪽에 콜레스테롤과 염증 세포, 석회가 뭉친 덩어리가 쌓이는데, 이걸 죽종(플라크)이라고 불러요. 죽종이 커질수록 혈관 통로가 좁아지고, 결국 다리 끝까지 피가 충분히 내려가지 못하게 되는 거죠.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나이 모두 위험 요인이지만 다리 혈관에서만큼은 흡연이 유독 강력한 요인으로 꼽혀요. 미국심장협회(AHA)와 미국심장학회(ACC)가 2024년에 낸 말초동맥질환 가이드라인에서도 흡연을 가장 중요한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 중 하나로 짚고 있고, 한국 질병관리청 자료에서도 흡연자가 말초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비흡연자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담배 한 개비가 혈관 안에서 벌이는 일

담배 연기 속 니코틴은 혈관을 순간적으로 수축시켜요. 담배를 피우고 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말초 혈관이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예요. 여기에 일산화탄소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산소 대신 달라붙어 버려서, 같은 양의 피가 흘러도 조직에 전달되는 산소는 줄어들게 되죠.

더 무서운 건 장기적인 변화예요. 연기 속 각종 산화물질이 혈관 안쪽을 덮고 있는 얇은 세포층, 즉 내피세포를 계속 손상시키거든요. 매끈해야 할 혈관 안쪽이 거칠어지면 그 자리에 콜레스테롤이 들러붙고 염증이 생기면서 죽종이 빠르게 자라요. 게다가 흡연은 혈소판을 끈적하게 만들어 피딱지(혈전)가 잘 생기게 하는데요, 이미 좁아진 혈관에 혈전까지 막아버리면 하루아침에 다리로 가는 피가 뚝 끊기는 상황도 생길 수 있어요.

비교적 젊은 흡연자에게서 손발의 작은 혈관이 염증으로 막히는 버거씨병(폐쇄성 혈전혈관염)이라는 병도 있는데, 이 병은 거의 전적으로 흡연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담배를 끊지 않으면 치료가 사실상 어렵다고 할 정도죠.

흡연자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신호들

말초동맥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간헐적 파행이에요. 말이 어렵게 들리는데, 쉽게 말하면 걸으면 종아리나 허벅지, 엉덩이가 조이듯 아프고 쉬면 금방 나아지는 증상이에요. 근육이 일하면서 산소를 더 달라고 하는데 좁아진 혈관이 그걸 못 따라가서 생기는 통증이거든요. 문제는 많은 분들이 이걸 "나이 들어서 그렇지", "요즘 운동을 안 해서 다리가 약해졌나 보다" 하고 넘긴다는 거예요. 허리 디스크로 오해하고 한참 정형외과만 다니시는 분도 꽤 계시고요.

그 밖에도 한쪽 발만 유독 차갑거나 색이 창백하고, 다리털이 빠지고 피부가 반질반질해지는 변화, 발톱이 잘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는 것, 발에 난 작은 상처가 몇 주가 지나도 아물지 않는 것 모두 혈류가 부족하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남성분들의 경우 발기부전이 먼저 나타나기도 하는데, 골반 쪽 혈관도 같은 원리로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병이 더 진행되면 가만히 누워 있어도 발이 아파요. 특히 밤에 누우면 통증이 심해져서 다리를 침대 밖으로 늘어뜨리고 자야 편하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중력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피가 내려갈 만큼 혈류가 부족하다는 뜻이에요. 이 단계를 만성 하지위협허혈(CLTI, Chronic Limb-Threatening Ischemia)이라고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다리 자체가 위협받는 상태예요.

진단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시작해요. 발목과 팔의 혈압을 재서 비율을 계산하는 발목상완지수(ABI) 검사가 기본인데, 발목 혈압이 팔보다 눈에 띄게 낮게 나오면 다리 혈관이 좁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다음에 도플러 초음파나 CT 혈관조영술로 어디가 얼마나 막혔는지 확인하게 되죠.

약과 운동으로 버티는 단계부터 시작해요

증상이 가벼울 때는 금연, 아스피린 같은 항혈소판제, 스타틴(콜레스테롤 약), 혈압과 혈당 조절, 그리고 감독 하 걷기 운동이 기본 치료예요. 아프기 직전까지 걷고, 쉬었다가 다시 걷는 걸 반복하면 작은 곁가지 혈관들이 발달하면서 걷는 거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단계에서 담배를 끊지 못하면 다른 치료의 효과가 크게 떨어져요. 약을 아무리 잘 챙겨 먹어도 매일 혈관에 새로 상처를 내고 있는 셈이니까요.

시술과 수술까지 가게 되는 순간들

걷는 거리가 너무 짧아져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거나, 쉬어도 통증이 있거나, 상처가 낫지 않는 단계가 되면 막힌 혈관을 직접 뚫어주는 치료를 고민하게 돼요. 이걸 통틀어 혈관 재개통술이라고 불러요.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풍선확장술이에요. 사타구니 쪽 동맥으로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넣어서 좁아진 부위까지 밀고 간 뒤, 끝에 달린 작은 풍선을 부풀려 혈관을 넓히는 방법이에요. 절개가 거의 없어서 회복이 빠르다는 게 장점이죠. 다만 풍선을 빼고 나면 혈관이 다시 오므라들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좁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요즘은 표면에 약물이 발린 풍선을 쓰기도 해요.

풍선으로 넓힌 자리가 다시 주저앉을 것 같으면 스텐트를 넣어요. 스텐트는 그물망처럼 생긴 작은 금속 관인데, 혈관 안에 남겨서 통로를 버팀목처럼 받쳐주는 역할을 해요. 이것 역시 약물이 코팅된 제품이 많이 쓰이고요. 그런데 스텐트 안에서도 조직이 자라거나 혈전이 생겨 다시 막힐 수 있어요. 그래서 스텐트 시술 후에는 항혈소판제를 꼼꼼히 먹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죽종 절제술은 혈관 안에 쌓인 딱딱한 죽종을 직접 깎아내거나 긁어내는 방법이에요. 카테터 끝에 달린 작은 칼날이나 회전 장치로 석회가 심한 죽종을 제거하는데, 풍선만으로는 잘 안 펴지는 딱딱한 병변에서 주로 쓰여요. 경동맥처럼 큰 혈관에서는 혈관을 열고 죽종을 벗겨내는 수술적 방식(내막절제술)도 있어요.

막힌 구간이 너무 길거나 여러 군데가 막혀서 시술로 해결이 어려울 때는 혈관 우회술을 해요. 막힌 부분 위쪽과 아래쪽을 새 혈관으로 이어서 피가 돌아가게 길을 만들어주는 수술이에요. 환자 본인의 다리 정맥(주로 대복재정맥)을 떼어 쓰는 경우가 많고, 쓸 만한 정맥이 없으면 인조혈관을 쓰기도 하죠. 시술보다 몸에 부담이 크지만 오래 버티는 경우가 많아서, 수술을 견딜 수 있는 분이라면 좋은 선택지가 돼요.

수술 후 첫 하루는 시계와의 싸움이에요

혈관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올라오면 병동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수술 직후 처음 한 시간은 15분마다 네 번, 그다음은 30분마다 네 번, 그 뒤로는 한 시간마다 네 번씩 간격을 넓혀 가며 다리를 확인해요. 수술 부위에 출혈이나 부기가 없는지 보고, 발등동맥과 뒤정강동맥 같은 다리 맥박을 손으로 짚어보고, 잘 안 잡히면 도플러 기계를 대고 소리로 혈류를 확인하죠. 수술 전보다 소리가 약해졌거나 아예 들리지 않으면 바로 의사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이에요. 새로 뚫은 혈관이나 우회 혈관이 막혔을 수도 있거든요.

이 시간 동안 함께 챙기는 게 5P 사인이에요. 통증(Pain), 창백함(Pallor), 맥박 소실(Pulselessness), 감각 이상(Paresthesia), 마비(Paralysis)의 앞글자를 딴 건데, 다리에 피가 급격히 안 통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고 신호예요. 차가움(Poikilothermia)을 더해서 6P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또 하나 신경 쓰는 게 구획증후군이에요. 다리 근육은 질긴 막으로 몇 개의 방(구획)처럼 나뉘어 있는데, 오랫동안 피가 안 가다가 수술로 갑자기 피가 다시 돌면 근육이 붓기 시작해요. 그런데 막이 늘어나지 않으니 안쪽 압력이 치솟으면서 오히려 혈관과 신경을 짓누르게 되죠. 진통제를 줘도 가라앉지 않는 심한 통증, 특히 발가락을 살짝 움직여 주기만 해도 비명을 지를 만큼 아파하시면 강하게 의심해요. 그대로 두면 근육이 괴사 할 수 있어서, 필요하면 응급으로 근막을 절개해 압력을 빼주는 수술을 하게 돼요.

그래서 수술 후 첫날밤은 정말 긴장의 연속이에요. 맥박이 잘 잡히다가도 새벽에 갑자기 약해지는 경우가 있고, 그러면 다시 수술실로 내려가는 일도 드물지 않거든요.

수술이 반복되면 결국 길이 막혀요

혈관 수술은 한 번으로 끝나는 치료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뚫어놓은 혈관이 다시 좁아지고, 스텐트 안이 막히고, 우회 혈관이 막히면 또 시술을 받아요. 그러다 보니 저희 병동에서 "지난번에도 뵀던 분"이 되는 거죠.

그런데 시술과 수술이 반복될수록 선택지는 줄어들어요. 혈관벽은 시술할 때마다 상처를 입고, 이미 스텐트가 들어간 자리는 다시 뚫기가 까다로워지고, 우회술에 쓸 정맥도 한정돼 있거든요. 결국 어느 순간에는 스텐트를 넣을 만한 혈관을, 우회로를 이을 만한 자리를 더 이상 찾지 못하는 상황이 와요. 의료진 입장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에요.

마지막 선택지, 절단

피가 전혀 가지 않는 조직은 결국 죽어요. 발가락 끝이 검게 변하는 괴저(괴사)가 생기고, 여기에 감염까지 겹치면 온몸으로 균이 퍼지는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 단계에서는 살아 있는 부분을 지키기 위해 죽은 조직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발가락 하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혈류가 여전히 부족하면 절단 부위가 아물지 않고, 다시 발의 앞부분, 무릎 아래, 무릎 위로 절단 범위가 올라가기도 해요. 절단 이후의 삶은 단순히 다리 하나를 잃는 것에서 끝나지 않더라고요. 걷는 능력, 혼자 생활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전신 혈관이 이미 나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심장이나 뇌 쪽 문제도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흔해요.

수술 후에도 다시 담배를 드시는 분들

제가 이 글을 꼭 쓰고 싶었던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어요.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건 누구나 알잖아요. 그런데 다리 혈관 수술까지 받고, 그 힘든 첫날밤을 넘기고, 퇴원하고 나서 다시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다음 입원 때 여쭤보면 "끊었다가 다시 피웠어요", "하루 몇 개비로 줄였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흔하죠.

연구 결과도 이걸 뒷받침하고 있어요. 미국혈관외과학회지(Journal of Vascular Surgery)에 실린 연구에서는 하지위협허혈로 혈관 재개통술을 받은 환자들을 분석했는데, 금연 기간이 길수록 이후 절단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어요. 반대로 계속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은 뚫어놓은 혈관이나 우회 혈관이 다시 막히는 비율이 높고, 절단과 사망 위험도 올라간다는 결과가 여러 연구에서 반복해서 나오고 있고요.

니코틴 중독은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요즘은 수술 전후로 금연 상담, 니코틴 패치나 껌, 금연 약물을 적극적으로 함께 권해요. 한국에서는 보건소 금연클리닉이나 금연상담전화(1544-9030)를 이용할 수 있고, 미국에서는 1-800-QUIT-NOW로 연결되는 무료 금연 상담이 있어요. 혼자 참는 것보다 도움을 받으면서 끊는 쪽이 성공률이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으니 꼭 활용해 보셨으면 해요.

다리가 보내는 신호를 흘려듣지 않았으면 해요

걸을 때 종아리가 당기고 쉬면 나아지는 증상, 한쪽 발만 차가운 느낌, 잘 낫지 않는 발의 상처. 담배를 피우시는 분이라면 이런 신호를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말고 꼭 발목상완지수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일찍 발견할수록 약과 운동, 금연만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거든요.

그리고 이미 수술을 받으셨다면, 그 수술이 마지막 수술이 되도록 담배만큼은 꼭 내려놓으셨으면 해요. 병동에서 다시 뵙는 게 반갑지 않은 유일한 분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거든요. 다음에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두 다리로 잘 걸어 다니시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요.

참고자료

2024 ACC/AHA Guideline for the Management of Lower Extremity Peripheral Artery Disease, Circulation — https://www.ahajournals.org/doi/10.1161/CIR.0000000000001251
American Heart Association, Key Patient Messages: 2024 AHA/ACC PAD Guideline — https://professional.heart.org/en/science-news/patient-resources/key-patient-messages-2024-aha-acc-guideline-on-the-management-o f-lower-extremity-pad
Smoking Cessation Duration to Decrease the Risk of Amputation After Revascularization for Chronic Limb-Threatening Ischemia, Journal of Vascular Surgery — https://www.jvascsurg.org/article/S0741-5214(25) 00418-5/fulltext
Smoking Behavior and Major Cardiovascular and Limb Events in Patients With Peripheral Artery Disease, PMC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3491123/
질병관리청, 흡연의 건강영향 - 장기적 영향 — https://www.kdca.go.kr/contents.es?mid=a20205010802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흡연 — https://health.kdca.go.kr/healthinfo/biz/health/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gnrlzHealthInfoView.do?cntnts_sn=5299

 

개인 경험과 중환자실 관찰을 바탕으로 쓴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병원 시스템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