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콜라이(대장균, E. coli)라는 이름만 들으면 식중독이나 오염된 음식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대장균은 건강한 사람의 장 속에 늘 존재하는 균이다. 대부분의 대장균 균주는 우리 몸에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준다. 문제는 이 균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즉 대장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혹은 애초에 몸에 해로운 특정 균주였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이콜라이가 주는 이득대장 속 대장균은 소화를 돕고 비타민K 합성에 관여한다. 비타민K는 혈액 응고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데, 우리가 먹는 음식만으로는 부족한 양을 장내 대장균 같은 세균들이 만들어서 보충해 준다. 또한 대장균은 대장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해로운 균이 자리 잡지 못하게 막는 일..
장 건강이 무너지면 생기는 일요즘 미디어를 보면 연예인들이 나와서 프로바이오틱 몇 박스씩 쌓아 놓고 "이거 먹고 똥배가 쫙 빠졌다"라고 광고하는 걸 심심찮게 본다. 나도 그걸 보고 몇 번이나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런 광고들을 보다 보면 자꾸 초점이 "살이 빠지느냐 마느냐"에만 맞춰진다는 느낌이 든다. 정작 중요한 건 장이 무너지면 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인데 말이다.장은 단순히 소화만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다. 몸 전체의 면역세포의 상당수가 장에 몰려 있고, 장점막이 건강해야 그 면역 기능도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장 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진 상태, 이른바 디스바이오시스가 만성화되면 장점막 장벽이 약해지고, 이게 전신에 걸친 만성 저강도 염증으로 이어질 수 ..
중환자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노화내가 일하는 중환자실은 요즘 노인 환자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데, 병원 안에서 그걸 매일 몸으로 실감한다. 침상마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누워 계시고, 그분들을 돌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대소변 조절이 잘 안 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것. 그리고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실수를 하셨다는 걸 본인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실 때다. 감각이 무뎌지니 그냥 지나쳐 버리시는 거다. 오래 쓴 기계에 녹이 스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 신호가 둔해지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도 이제 중년에 접어드니 남 일 같지가 않다.왜 나이가 들면 대소변 조절이 어려워질까요실금이나 변실금은..
남자들이 유독 잘 걸린다는 통풍, 진짜 맥주 때문일까몇 년 전에 타지에서 오랜만에 남자 동창을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이 친구가 대뜸 "나 통풍 있어서 술 조심해야 돼"라고 하는 거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명색이 중환자실 간호사인데, 통풍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잠깐 생각해 보니 아, 그 '풍(風)'이 바람 풍 자 들어가는 그 병이구나 싶었는데, 정작 왜 생기는지, 왜 여자보다 남자한테 압도적으로 많은지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사실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통풍약 챙겨 먹는 남자 환자를 정말 흔하게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병원에서는 여자 환자 중 통풍으로 약을 먹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도 맥주를 좋아하는데 왜 나는 안 걸릴까..
잔기침 몇 번과 갑작스러운 짜증, 그 뒤에 숨어 있던 이야기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경비 일을 하시는 아버님이 요 며칠 배탈이 나서 따님과 함께 클리닉에 가셨다고 합니다. 잔기침이야 원래도 가끔 하시던 거라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었는데, 진료를 보던 중에 며칠 동안 상한 음식을 드시고도 전혀 이상함을 못 느끼셨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왜 그런 걸 드셨냐고 묻자, 평소에 화 한 번 안 내시던 분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셨다고 하고요. 결국 배탈 때문에 간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다가, 폐에 물이 차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을 계속 나가실 만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셨으니, 숨이 조금 찬 것도 나이 들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신 것 같습니다.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던 눈빛간호학교 시절, 정신의학 실습을 두 곳에서 했다. 하나는 사립 정신병원, 다른 하나는 주립(국립) 정신병원이었다. 같은 정신의학 실습이었지만 두 곳에서 만난 환자들의 얼굴은 완전히 달랐다.사립 정신병원은 보험이나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 적용을 받는 환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약물이나 알코올 디톡스, 혹은 재발(relapse)로 다시 입원한 경우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경위가 비교적 분명했고,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도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결국 본인의 의지가 회복의 핵심이었고, 의료진은 그 의지를 지지해 주는 역할에 가까웠다.그런데 주립 정신병원에서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사립은 대부분 현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었다면, 주립은 이민자 비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