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시던 그분이 페이스메이커를 거부했던 이유몇 년 전 야간 근무 때 만났던 환자분 이야기를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60대 백인 여성분이었는데, 이웃이 놀러 왔다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계신 걸 발견해서 응급실로 실려 오셨다. 정신을 차리신 후에도 본인이 왜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냥 눈을 떠보니 차가운 타일 바닥이었다고 하셨다.검사가 하나씩 진행되면서 원인이 드러났다. 심박수가 너무 느렸고, 리듬도 일정하지 않아 가끔 툭툭 건너뛰는 경우가 있었다. 그 순간순간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지면서 실신, 그러니까 syncope가 왔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신 거였다. EKG를 찍기 전까지는 본인도, 주변 누구도 심장 리듬이 이상하다는 걸 몰랐다. 나중에 여쭤보니 최근 들어 ..
얼마 전 우편함에 골밀도 검사를 받으라는 편지가 왔다. 50을 넘겼으니 이제 대상자가 됐다는 통보였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마음은 여전히 30대인데, 종이 한 장이 내 나이를 정면으로 들이민 기분이었다. 혹시 내 뼈가 내 생각보다 훨씬 부실하면 어쩌지, 하는 겁부터 났다.그런데 정작 내가 한 행동은 병원 예약이 아니라 동네 헬스클럽 등록이었다. 검사 결과를 마주할 용기가 아직 없었던 거다. 대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헬스장부터 끊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걷는 것 외에는 운동이라고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많이 걸었지만, 그게 다였다어쩌다 하루 2만 보를 걸을 때도 있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나름 몸을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육 운동은 단..
신혼 초, 시댁 식구들 앞에서 울어버렸다 — 알고 보니 요로감염이었다신혼 초였다. 타주에 사시던 시댁 식구들이 시누이와 조카까지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12시간을 운전해서 오신 거였다. 나는 원래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라, 애초에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어지간히 해도 마음에 들까 싶어서, 그냥 최대한 편하게 대하려고만 했다. 그분들은 시골에서 오셨고, 나는 대도시에 살고 있었으니 매일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가이드해 드렸다. 다행히 나에게는 흔히 말하는 시월드의 쓴맛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분들도 나에게 폐가 될까 봐 먹을 음식까지 직접 챙겨 오실 정도로 조심스러워하셨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무리 편한 사이라 해도 '시' 자가 붙으면 뭔가 모르게 몸..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어딘가로 떠난다.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다. 조건은 하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떠났다 돌아오면 병원 인트라넷에 로그인할 아이디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머릿속이 완전히 백지가 되어 있어야 다시 일할 힘이 생긴다. 중환자실 일은 체력만 갈아넣는 일이 아니다. 감히 말하자면 정신적 노가다에 가깝다. 환자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보호자와의 신경전도 일상이고, 다른 과 의료진과의 소통도 매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환자의 밑도 끝도 없는 불평을 들어줘야 할 때도 있고, 환자는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데 의사의 지시는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 사이에 낀 샌드백처럼 너덜너덜해진 채로 퇴근하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나는 3개월을 넘기지 않고 반드시 떠난다...
20년 전,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하나 있다. 간호사가 되기 훨씬 전, 친구 부부가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예쁜 선남선녀 신혼부부였다. 어느 날, 남편분이 일하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골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응급실에 가서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다행이다, 골절이지만 큰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워낙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주위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깨우러 갔는데 남편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가셨다. 그때는 너무 젊었고,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이해가 안 됐다. 다리 하나 부러진 걸로 어떻게 사람이 잘못될 수가 있지, 하고.간호사가 되고서야 알게 된 것시간이 한참 지나 간호사가 되고 나서야 그때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오랫동안 나는 변비가 없다고 믿고 살았다. 왜냐하면, 쉬는 날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면 신기하게도 몇 분 안에 신호가 온다. 화장실에 앉으면 어렵지 않게, 그것도 꽤 만족스러운 상태로 일을 본다. 노랗고 단단하면서도 적당히 수분이 있는, 누가 봐도 정상적인 변. 그러니 변비라는 단어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같은 날 오후가 되면 갑자기 설사에 가까운 묽은 변이 다시 나온다. 하루에 두 번, 그것도 형태가 완전히 다른 변을 보는 게 계속 이해가 안 됐다. 전날 마신 술이 영향을 준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내 장이 원래 이렇게 반응이 빠른 편인가 싶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근무일에 나타났다. 12시간 근무를 이어서 사흘하고 삼일 쉬는 패턴으로 일..
